우리의 머리카락은 겉보기엔 부드럽지만, 사실 케라틴이라는 단백질로 이루어진 꽤나 견고한 구조물입니다. 이 단단한 케라틴 덩어리에 원하는 색을 입히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과학의 결과라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머리 염색약은 마치 정교한 화학 공장처럼 여러 가지 성분들이 순차적으로 작용하며 우리의 헤어 컬러를 극적으로 변화시킵니다.
그럼 지금부터 머리 염색약이 우리의 머리카락에 마법을 거는 단계별 화학 반응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볼까요?
1단계: 문을 여는 열쇠, 알칼리제
머리카락의 가장 바깥층은 '큐티클'이라는 비늘 모양의 세포들이 겹겹이 쌓여 강력한 보호막 역할을 합니다. 이 보호막을 뚫지 않고서는 염료가 머리카락 속으로 들어갈 수 없죠. 이때 그 문을 열어주는 '열쇠'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암모니아 또는 모노에탄올아민 같은 알칼리제입니다. 큐티클은 마치 벽돌처럼 단단하게 맞물려 머리카락 내부를 보호합니다.
알칼리제는 큐티클을 부풀려 틈을 만들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머리카락의 pH가 높아지면서 큐티클이 살짝 벌어지게 되죠. 과거에는 암모니아가 주로 사용되었으나, 특유의 강한 냄새와 자극성 때문에 요즘은 모노에탄올아민처럼 냄새가 덜하고 순한 성분으로 대체되는 추세입니다. 알칼리제 덕분에 큐티클 사이의 틈이 생겨 염료가 침투할 수 있게 됩니다.
2단계: 산화제에 의한 색을 빼는 마법
큐티클이 열리면 이제 염료가 들어갈 차례입니다. 하지만 그 전에 머리카락 본연의 색을 없애야 원하는 색을 더 선명하게 입힐 수 있겠죠? 이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산화제, 즉 과산화수소입니다.
과산화수소는 머리카락 속 멜라닌 색소를 산화시켜 분해하는 역할을 합니다. 멜라닌은 유멜라닌(검은색/갈색)과 페오멜라닌(붉은색/노란색)으로 나뉘는데, 과산화수소는 이 두 가지 색소를 파괴해 머리카락을 밝은 색으로 탈색시키는 것이죠. 탈색이 강하게 될수록 머리카락은 더 밝아지지만, 손상 또한 커지게 됩니다.
멜라닌 색소가 분해되면서 머리카락 본연의 색이 사라지고, 새로운 색을 받아들일 준비가 됩니다.
3단계: 염료에 의해 색을 채우는 화학 반응
마침내 머리카락 속으로 들어온 염료가 색을 입힐 차례입니다. 염색약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염료가 들어있습니다.
첫째는 산화 염료 중간체로, 머리카락 속에서 산화제와 만나 화학 반응을 일으켜 원하는 색을 만듭니다. 처음에는 무색의 작은 분자 상태로 존재하다가 산화제와 결합하여 커다란 유색 분자로 변하는 것이죠. 이렇게 커진 분자는 큐티클 틈으로 빠져나오지 못하고 머리카락 속에 갇히게 됩니다. `
두 번째는 커플러로, 산화염료 중간체와 결합하여 더 다양한 색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합니다. 마치 팔레트 위에서 물감들을 섞는 것처럼 여러 가지 염료 중간체와 커플러의 조합으로 수많은 염색약 색상이 탄생하는 것이죠.
이 모든 과정이 끝나고 샴푸로 머리를 감으면 벌어졌던 큐티클이 다시 닫히면서 염료가 머리카락 속에 안정적으로 고정됩니다.
이처럼 머리 염색약은 단순히 색을 바르는 행위가 아니라, 큐티클을 열고, 멜라닌 색소를 파괴하고, 새로운 색소 분자를 머리카락 속에서 합성하는 정교한 화학 반응의 연속입니다. 다음번에 염색을 할 때는 단순히 '색'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 신비롭고 재미있는 화학의 과정을 상상해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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